진정성이 그 영화의 승부인 것은 상업 영화에선 패착이다 스틸라이프


상업영화가 세 번째인데 어떤 차이가 있어요? 시사회도 안 했는데 이런 질문이 적당한 지는 모르겠는데, 지금까지 감독님 이야기만 들어보면 제 머리 속에 그려지는 상업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상업영화가 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의 흥행이 잘 되고나서 누군가 저에게 물어보더라도 같은 대답일 것 같아요.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건 있어요. <발레 교습소>를 끝내놓고 반성의 여행을 갔었거든요. 그 때 여행을 가서 느꼈던 게 ‘진정성이 그 영화의 승부인 것은 상업 영화에선 패착이다.’였어요.

왜냐하면 진정성을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고 저도 오해하는 게 있는데 사실 진정성은 모두가 진정성이 있다고 믿어주는 게 아니라 세계관이 같은 사람끼리 알아주는 게 진정성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상업영화를 하면서 세계관이 같은 사람만 보라고 작품을 만들 수 있겠어요? 결국 이것은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다섯 개가 있으면 그것을 열다섯 개처럼 펼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거지, 이 다섯 개에 맞추는 것은 치사하다, 그러면 나는 독립영화를 하는 게 맞다’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이번 <화차>를 만들면서 전에 하던 영화와 다른 점을 말한다면 얘도 해내고 얘도 해내고 얘도 해내야한다는 생각을 안 놓치려고 했다는 것 같아요. 하나를 해냈다는 만족감이 아니라요.

예전 작품할 때와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달라졌나요?

작은 거를 버리지 말고 잘 구축해야 관객들이 좋아할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건 단순히 담배 한 갑을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피우는 그 담배를 주면 더 좋다는 거죠. 겨우 하나 알아낸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자세의 시작이죠. 그래도 싫다면 어쩔 수 없어요. 담배 끊은 걸 제가 몰랐던 거면 미안한 거죠.


[인터뷰] <화차> 변영주 감독 ② 영화감독 변영주에게 상업영화 <화차>는? 중 발췌.
기사입력 :  2012.02.06 23:56  |  기자 : 김형호 기자 dajoa@maxmovie.com  맥스무비


가감 없이 바라보는 관계의 드라마, <파수꾼> -보기

 

일 년 전 이맘 때 쯤 개봉하여 제작비 5000만원의 독립영화로서는 굉장한 흥행이라 할 수 있는 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11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던 <파수꾼>. 젊은 감독과 젊은 배우들이 만들었지만 재기발랄하기보다는 시종일관 신중하고 진지한 십대 영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대변되던 90년대의 남학생들은 2011년의 지금, 주먹보다 좀 더 예민하게 날선 감정의 칼끝을 서로에게 겨눈다.

‘초’ 저예산에 유명한 배우도 없고 갓 한국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젊은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이렇게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지전>으로 주목 받은 이제훈이 주인공 기태를 연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 <파수꾼>이 <고지전>보다 먼저 개봉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관객수는 이제훈 때문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파수꾼>은 <무산일기>, <혜화, 동> 등 작년에 함께 개봉해서 화제가 되었던 다른 독립영화들에 비해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다고 여겨졌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때는 친했던, 그러나 자의로든 타의로든 멀어지고 난 뒤 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하기 힘들게 된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이 영화가 10대의 성장통에 국한된 이야기를 다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생 동안 안고 가야 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고, 싫어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싶다. 사회에는 무수한 집단과 만남이 존재하고 우리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人間)’이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필연이자 숙명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크게 혹은 작게 타인에게서 무수한 상처를 받고, 또 그들에게 상처를 돌려주며 산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이 업보를 반복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노하우와 방어책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위 ‘어른’으로 성장한다. 때 묻은 어른들은 새로운 관계와 사람을 대할 때 이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한 중무장을 한 채 시작한다. 무수한 관계와 그 실패로 인해 굳은살이 생긴 자리에 새로 난 상처가 주는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이지만 기태, 동윤, 희준은 달랐다. <파수꾼>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어른으로서의 진지한 관계맺기를 마악 시작한 10대 후반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누군가 죽었다, 누가 죽었을까, 그 누군가는 왜 죽었을까를 파헤치는 미스테리 구조를 차용하여 현재와 과거를 불친절하게 교차한다. 죽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아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가는 구조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궁금증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높여간다. 하지만 좀 더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영화의 구조가 아니라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감정들이다. 순간순간의 툭툭 내뱉어지는 사소한 단어와 어조, 표정들은 차곡차곡 다음 장면으로의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된다. 불친절하기에 더더욱 관객의 시청각을 곤두세우며 집중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신인감독의 솜씨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등장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 모두 관계 맺기에 서툴렀던 그 시절을 환기시키며 우리 안의 무엇을 ‘건드린다 ’ 

 

어른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숨길 줄 알며, 때와 장소에 알 맞는 말과 행동을 찾아 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늘 그렇게 배워왔다. 웃음을 감추고, 눈물을 삼키며,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학습함으로써 우리는 점점 어른으로 성장한다. 성장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솔직하고 고유한 특성, 즉 본질과 멀어져간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어른인 척 하고 싶었던 기태가 자신의 불안함과 콤플렉스가 노출되자 어떻게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친구들과 자신을 파괴해 가는지 영화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낸다.

기태는 덩치 큰 녀석들을 거느리며 학교 짱 노릇을 하지만, 남들이 자기 몰래 눈짓을 주고받을 때 뭐 때문에 그러느냐고 앞에서 대놓고 물어볼 용기도 없는 여린 소년이다. 가정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관심과 사랑을 교우관계에서 채우고자하는 기태의 욕망은 말과 행동이 의도와는 달리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고, 친구였던 희준이 자신의 본심과 달리 멀어져가자 폭력으로 변질된다.

미숙한 건 기태 뿐이 아니다. 셋 중 비교적 어른스러운 척 하는 동윤 역시 기태의 이간질에 그토록 아끼던 여자친구 세정을 의심하는 한 편 남자들 앞에서 고작 ‘센 척’을 좀 해보겠답시고 세정을 위험에 빠뜨리는 원인을 제공한다. 한 때 ‘예쁜 여자를 서로 양보할 정도로’ 기태와 서로를 위했던 희준은 부서진 관계의 조각들을 맞추기보다는 (우리의 기대보다는 조금) 쉽게 도피를 택한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는 일에 서툰 아이들. 그리고 문제가 닥쳤을 때 조금 더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 상처받기 쉽고 상처주기도 쉬운 이런 순수한 마음들이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파국이 시작된다. 어쩌면 영화는 어른이 된 이들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와 나, 우리 모두 이 시간들을 걸어왔어. 그러니 스스로를 조금 더 대견하다고 위로해주자. ’ 라고.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한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무뎌질거야’ 라고. 그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온, 그리고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은 진정한 우리 스스로의 <파수꾼> 인 것이다.

 

남자란 무엇인가.

 

나는 이 영화가 아주 오랜만에 (혹은 내가 아는 한 한국 영화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10대 남성의 감성을 매우 솔직하고 거품기 없는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비트>의 반항아들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친구>의 마초들은 거부감 느껴진다. 그 시대의 청춘물들은 일탈에의 대리만족이었을 뿐 보편적인 십대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스크린 속 ‘친구’ 들에 열광했던 또래 소년들은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 허탈해졌다. 내가 보던 그 친구는 내 꿈이나 이상이었을 뿐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수꾼>은 다르다. 이 영화에서 십대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볼 것이다. 이미 십대를 지나온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과장과 폭력의 판타지적 청춘물 속에서 어떻게든 멋져 보이려 애를 쓰며 허세를 부리던 남자아이들은 <파수꾼>에 이르러서야 자신들을 이루고 있는 남성성의 실체를 드러낸다.

자신의 깨질듯 한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가장된 ‘센 척’은 향후 징병제가 만들어낸 슬픈 폐단인 계급문화까지 이어지며, 수컷들에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야만 살아남는다는 논리를 주입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기준에 건방져 보이는 아랫사람에게 마음 놓고 ‘많이 컸네?’라고 비아냥거리며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타락한다.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마초성의 최초 발현기에 대한 이 담담한 보고서는 시간이 흐른 뒤 지성과 양심이 마구 타락하여 넝마가 된 ‘아저씨’ 들에게도 그 언젠가 순수했던 ‘소년’의 모습이 있었노라고 대변해주는 듯하다. 그 어조가 너무 간결하고 실감나서 가슴이 아리고, 그 대변이 너무 설득력 있어서 더욱 마음이 쓸쓸하다. 이것이 진짜 ‘남성의 증명’ 이 아니던가.

가장 강해보이는 것들, 혹은 가장 강해보이고자 애쓰는 것들이 실상은 가장 약하다.


애잔하구만~ -보기





크아...!!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단상. -보기

얼마 전부터 야무지게 일본제품 구매를 중지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영화 때문에 스스로와의 약속이 깨져버렸다.



이렇게 어슬렁 타협해버리고선,
'문화상품'에 한해서는 예외를 둔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며(?) 자기 합리화 -ㅅ-;

어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다른 작품들도 하루 빨리 봐야겠다는 결심이 설 만큼 이 영화는 멋졌다.

액션도 스릴러도 메시지 있는 드라마도 좋지만,
이렇게 보고 나서 종일 마음이 달달하고 따뜻해지게 하는 영화들이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부모를 너무 안 닮았으.

*역시 최고의 명대사:

-형, 인디음악이 뭐야?
-음..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음악이야.

독립영화인 여러분, 앞으로 더 열심히 합시다 +_+

*역시 조연들의 화려함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담임 선생님 역의 아베 히로시, 교내 도서관 사서 선생님 역의 나가사와 마사미.
늘 얘기하는 거지만 국내 A급 배우들 정말 보고들 배우시길.

*엄마가 동창회 갔다와서 둘째랑 통화하는 걸 보며 울었다.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는 걸 보니,
음.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나도 억지로 즐거운 척 하며 사는 거 힘들어. 아빤 양육수당 받잖아.
그래서 말인데 나 양육수당 반만 주면 안될까?

-값싼 아빠의 무릎은 운다.

* (집에 들어오며 할아버지에게 귓속말로)
-류랑 할아버지 가루칸 떡 나눠먹었어
-맛이 어떻대?
-걔는 어려서 맛을 잘 몰라.
(두 살 차이)

*여배우를 꿈꾸는 소녀보단, 그림 잘 그리고 싶은 소녀가 좀 더 내 취향.
아 너무 귀엽지 않은가!!! +_+
살짝 <폰>에 나왔전 최지연씨를 닮은 듯도 하고.
아무튼 두 소녀 모두 미래가 기대됨
(아, 바나나 소녀도.)

*마지막에 화산폭발하는 애니숏지나고 나서 이어지는 인서트들!
눈물나게 좋다.
세상엔 지킬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하기로 했다면...
오다기리조 같은 아빠로 살라는건가.............-ㅅ-;

 *일어 원제가 그냥 '기적' 이고, 영제도 'I wish'던데
뭐하러 그렇게 긴 한글로 번역해놨나 싶었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국에서 바꿔지은 제목이 마음에 드는 건.



한 명의 배우로 완성되는 완벽한 미장센 -보기



빠담빠담을 보며 늙어버린 정우성의 모습에 탄식하다
오랜만에 <비트>를 다시 보다.

한 명의 배우로 완성되는 완벽한 미장센







경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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