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아...!!
얼마 전부터 야무지게 일본제품 구매를 중지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영화 때문에 스스로와의 약속이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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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자기 복제 속 차별적 미학
-김기영 감독의 <충녀>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2. <충녀> 작품분석
2-1. 색채와 사운드의 적극적 활용
2-2. 공간대비의 다변화
2-3. 강화된 모티브들: 쥐, 꿀벌, 새
3.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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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김기영 감독은 1998년 불의의 화재사고로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35년간 총 서른 두 편의 영화들을 세상에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의 시각에서 보아도 매우 실험적인 이야기와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며 동시대와 활동했던 다른 감독들과는 구분되는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며,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는지 다소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올해 임상수 감독이 <하녀>를 리메이크 하면서 원작 <하녀> 역시 비교적 대규모로 재개봉 하는 등 김기영 감독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다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의 <하녀>는 원작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보다는 필요 이상 선정적 장면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는 등 피상적인 답습에 머무르며 실망을 안긴 것이 사실이다.
김기영 감독은 동시대 감독들로 규정지을 수 있는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김수용 감독들이 전성기에 남긴 작품 편수에 비해 당시 상황에서는 과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느린 호흡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보통 1년에 1편 정도를 개봉했는데 당시 소위 잘 나가는 감독들이 1년에 최소 2~3편(신상옥 감독은 1961년에 <연산군>,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네 편을, 1963년에는 <로맨스 그레이>, <쌀>, <강화도령>, <철종과 복녀>, <횃불> 등 다섯 편을 감독했다. 이만희 감독은 1966년에 <군번 없는 용사>, <만추>, <물레방아>, <잊을 수 없는 여인> 네 편을 감독했는데, 이들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다음 해인 1967년에는 <귀로>, <기적>, <냉과 열>, <망각>, <방콕의 하리마오>, <사기한 미스터 허>, <삼각의 공포>, <싸리골의 신화>, <얼룩무늬의 사나이>, <원점>, <흙바람> 등 무려 11편을 연출한다. )을 만들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는 요즘 감독들로 따지면 십여 년에 한 편 정도를 개봉하는 것과 비슷한 빈도였다.
김기영의 과작주의는 대부분 제작과 감독을 겸했던 이중고, 촬영과 조명과 미술에 대한 완벽주의적인 수공업의 고수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영화 편수만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김기영의 영화는 동어반복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모든 영화가 비슷한 이야기와 주제를 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영화사에서 최초로 작가주의적인 일관성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집스러운 스타일과 취향 속에 갇혀 있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상찬과 ‘악취미의 수집갗라는 비판이 그의 텍스트를 따라다녔다. (<전설의 낙인>, 이연호, 한국 영상 자료원, 2007, p. 51)
통상적으로 그의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연출자 특유의 뚜렷한 색채와 주제적 일관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는 <하녀>가 개봉했던 1960년 이후로 분류된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들은 1960년 작 <하녀>와 이를 리메이크한 1972년 작 <화녀>, 그리고 <화녀>의 대대적인 흥행에 힘입어 이듬해 개봉한 <화녀>의 연작 격인 <충녀>, 그리고 <하녀>와 <충녀>를 각각 리메이크한 1982년 작 <화녀’82>와 1984년 작 <육식동물>에 이르는 소위 ‘女’시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영 감독은 만든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고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女’ 시리즈로 환귀하며 심기일전했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는데 <화녀>는 당시 25만, <충녀>는 15만 명이라는 놀라운 스코어를 기록했으며, 김기영 감독은 <화녀>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충녀>로 백상예술대상 감독상을 각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상한다.
이 글에서는 예술적, 흥행적 성과를 모두 이루었지만 <하녀> 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충녀>를 분석함으로써, 김기영 감독의 자기 복제적 작품세계 속에서 구분되어지는 <충녀>만의 차별성과 미학적 성취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충녀> 작품분석
<충녀(1972)>는 당시 유명했던 명보극장 사장이 여비서에 의해 살해되었던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김기영 감독이 이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것으로, 후처 출신 어머니를 둔 명자(윤여정)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활고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호스티스 생활을 하다 김 사장(남궁원)과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된 뒤 첩이 되어 본부인(전계현)과 권력다툼을 하다 결국 음모에 휘말려 광기에 휩싸인 채 남편을 살해하고, 그 현장검증 상황에서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캐릭터 및 내러티브 적인 면에서는 이전까지의 영화들에서 등장했던 단란한 가정의 침입자 역할을 맡는 캐릭터가 하녀가 아닌 호스티스로 처음으로 캐릭터에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당시 가정을 이룬 가장이 후처를 두는 것이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주인공이 정식으로 후처로서의 권익을 전면적으로 주장하고 나서며, 본처가 이를 인정하고 남편의 시간을 2등분하여 후처와 함께 나눠 가지는 규칙까지 만들며 가장을 공유한다는 점. 그리고 <하녀>에서는 비루하게나마 가정의 경제적 기반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주도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본처의 위세에 완전히 억압되어 매달 용돈을 받고, 정신적 이유로 성 불구가 되는 수난을 당하는 등의 무능한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차이를 지닌다.
텍스트 내적으로는 몇 편의 영화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몇 모티브들이 한층 강화되거나 새로운 상징들이 더해졌으며, 이를 표현하는 방식들이 뜻을 같이 하는 기술스탭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연구를 통해 한층 도발적이고 세련되어졌다.
2-1. 색채와 사운드의 적극적 활용
김기영 감독은 <화녀>부터 서울대학교 후배인 정일성 촬영기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컬러영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김기영 감독은 정일성 기사를 공부하는 촬영감독, 정 박사(특별히 마음에 드는 쇼트가 완성되었을 때 이런 호칭을 사용했다고 알려진다.)등으로 부르며 탐미주의적 작가정신을 공유하는 영화적 동지로 여겼다.
정일성 기사는 나의 대학 후배이지. 그는 공부를 많이 하는 촬영 기사로도 유명한데 촬영의 테크닉에 대한 연구도 연구지만 촬영에 대한 학술적 연구도 많이 한 사람이지. 한국영화에 있어 카메라맨의 작가주의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그라고 생각해. 그와 내가 의기투합해서 그동안 총천연색이라는 색동저고리의 칼라영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심리적인 칼라를 한번 형상화 해보자고 해서 연구를 많이 해서 이 영화(화녀)를 찍었어. 당시에는 마땅한 필터가 없어서 맥주병을 카메라 앞에 대고 찍어보기도 하고 세트장에서 밤새도록 배경색을 칠하고는 다시 지우고 또 다시 칠하는 작업을 반복했지.
(<24년간의 대화-김기영 감독 인터뷰집> 대담: 유지형, 선, 2006, p.133)
이런 두 사람의 창조적 협업은 <충녀>에서 차정남 조명기사가 합세하면서 더욱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는 특히 붉은 빛과 푸른빛의 대조가 두드러지는데, 리얼리티보다는 감독의 의도와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더 무게를 두는 조명과 색채 운용은 후에 몇몇 평론가들이 그를 비네나 무르나우의 후예로 평가하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영화가 ‘그로테스크’나 ‘컬트’와 같은 표피적인 취향만으로 평가받던 시기에 대하여 큰 아쉬움을 피력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일궈낸 색채효과는 동시대 다른 감독들이 하지 못한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다. 조명은 한 장면 안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한 프레임 안에서도 변화하며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감독은 한 프레임 안에서도 조명을 통한 극명한 색채대비를 즐겼는데, (명자가 호스티스 선배들의 공모로 돈 보따리를 싸들고 나타난 남자와 여관에 간 장면, 명자의 아파트에서 김 사장과 명자가 식사를 한 뒤 사랑을 나누는 장면, 없어졌던 아이가 명자의 꿈속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 등) 이는 뒤에 언급할 명자의 공간(아파트, 이층집)과 본처의 공간(김 사장 본가 및 아내의 침실)을 대비하는데도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소도구들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소도구 하나하나까지 직접 제작했다고 알려진 김기영 감독은 벌집 모양의 전등 갓, 클럽이나 바에나 있을법한 천장의 원형 조명, 빨갛고 파란 빛의 구슬 모양 조명등 등을 의도적으로 일상적 공간으로 등장하는 세트 곳곳에 배치하여 색채 효과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유명한 장면이라고 할 만한 사탕 섹스 신 역시 유리로 된 탁자 위에 색색의 사탕을 뿌려놓은 채 명자와 김 사장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앙각으로 촬영하여 감독이 베드신에서 사실성보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했다는 것을 잘 드러내준다.
사운드 역시 재미있는 실험들을 보여준다. 명자가 김 사장과 처음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에서는 돌연 디제시스와 무관한 물소리가 등장하는데, 이런 사운드 몽타주는 후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적극적으로 김 사장을 유혹하여 벌이는 섹스 신 에서는 발랄한 새소리로, 후반부 ‘가면 뺏겨! 가면 뺏겨!’ 라고 외친 뒤 계단에서 면도칼로 김 사장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다시 물소리로 변모하며 명자의 심리를 대변한다.
또한 명자의 테마라고 할 수 있는 한 곡의 반복적 사용도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영화 전반적으로 영상에 들인 공에 비해 배경음악은 아쉬움을 남기는데, 이는 당시 음악감독의 역할이 감독이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독립적인 영역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과도 연계될 듯하다. 하지만 명자가 처음으로 술집에 출근하는 날 초록색 투피스를 입고 동네 비탈길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향후 명자의 테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심경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김 사장과 첫 관계 후 길을 걸어가는 장면, 김 사장과 명자가 동거를 결정한 뒤 여의도 광장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 자살기도 후 명자가 어머니 집으로 선물을 들고 찾아가는 장면) 맞춰 등장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영화 음악의 두 번째 특징으로는 디제시스 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랑의 로망스>를 들 수 있다. 영화에서 본처의 집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김 사장의 딸은 1층 거실에서 피아노로 스페인 민요 <사랑의 로망스>를 연주하는데, 명자가 자신을 첩으로서 정식으로 인정해달라고 호스티스 친구들을 데려와 난동을 부리고 간 뒤에도 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앉아 같은 곡을 친다. 명자가 김 사장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걱정한 본처가 술에 진정제를 먹여 김 사장을 기절시킨 뒤 병원으로 데려가는 장면에서도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딸의 모습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1층에서 딸이 연주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의 로망스>는 2층 안방에서도 계속 들린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이 아름다운 곡은 처음에는 부유하고 화목한, 완벽해 보이는 외양을 갖춘 한 가정의 모습을 은유하다가, 이 가정이 지닌 비밀과 가족 구성원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이면의 폭력성을 드러내면서 점점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애완용으로 흰 쥐를 기르는 듯 보이지만 결국 쥐를 첩에 대한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는 딸의 모습이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첩을 인정하지만 뒤로는 첩이 자신의 권력을 넘보는 것을 응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본처의 모습 등 평화로워 보이던 이 이층집과 가정의 모순적인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단조곡의 반복은 공포스런 느낌마저 자아낸다.
2-2. 공간대비의 다변화
<하녀> 시리즈에서는 하나의 공간에 두 명의 여인이 공존함으로서 등장인물들 간의 긴장감이 형성되었다면, <충녀>에서는 명자와 본처가 각자의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고 그녀들의 공간은 뚜렷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명자의 공간인 아파트, 그리고 자살기도 사건 이후 본처가 얻어준 이층집은 붉고 푸른빛을 띠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강렬한 컬러감과 조명효과를 통해 에로틱한 무드를 만든다. 이 효과들은 후반부 아이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추가되면서 기괴한 공포감을 조성하게 된다. 이는 강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하고 밝은 톤의 본처의 집과 대비되며 공간을 통해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대비시킨다. 이런 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김 사장이 명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정에 본가로 돌아와 아내의 침실에서 잘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명자의 공간에서는 관계에 적극적이었던 김 사장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침실에서는 섹스를 거부하는데, 침대에서 김 사장의 대사를 통해 설명되고 있는 명자와 아내의 차이점은 그의 말 이전에 미장센으로 먼저 설명된 것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에서 계단이 의미하는 바를 가지고도 한 편의 독립된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계단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에서 상징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녀>에서는 하위 계급의 여성의 신분 상승 욕망을 상징하는 코드이자, 그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대가로 지불해야 했던 죽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충녀>에서 계단은 기존의 <하녀> 시리즈가 품고 있는 기본적 은유 외에도 두 여인이 같은 공간에 등장하는 장면에서 대비를 주는 요소로,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가족 구성원들 내에서도 계단의 높낮이가 부여하는 시선의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구분되는 장치로 활용된다.
영화 속에서 감독의 스타일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 중 하나인 김 사장 가족의 식사시간에 명자가 찾아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고 하는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프레임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로 서사 내에서의 참여도를 설명하는 재미있는 대목이다. 식사 중에 가정부가 와서 젊은 여자의 등장을 전하자, 김 사장은 움찔하며 식탁을 떠나 2층으로 향한다. 슬금슬금 계단을 올라가는 김 사장과는 달리 본처는 명자를 향해 당당하게 다가간다. 다음 쇼트에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명자는 일어나서 본처에게 자신이 찾아오게 된 이유를 말하고, 그 다음 쇼트에서는 본처가 명자의 말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받아친다. 이 쇼트에서 아들과 딸은 어느 새 계단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는데, 전 전 쇼트에서 김 사장이 2층으로 올라가는 행동에서는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가 들렸던 것에 비해 이 쇼트에서는 아들과 딸이 ‘이미 계단에 올라와 있는 것’에 대하여 오프사운드로서도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영화의 리얼리즘을 꼭 과학적인 합리성에 두는 것이 아니라고 난 생각해. 영화상에는 관객을 방해하는 그 무엇인가가 꼭 있기 마련이지. ” (<24년간의 대화-김기영 감독 인터뷰집> 대담: 유지형, 선, 2006, p.141)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논리보다는 감성이 우위를 점하는 작가적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찌되었든 김 사장은 계단 위 벽 뒤에서, 아들과 딸은 김 사장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관람하는 일종의 ‘관객’으로서 위치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정확히 김 사장의 시점쇼트라고 할 만한 쇼트는 하나에 불과하지만, 인물들의 위치가 정해진 다음부터는 김 사장 혹은 자녀들의 시점쯤이라고 여겨지는 부감 쇼트들이 1층에서 벌어지는 평각 쇼트들과 리드미컬하게 병치되면서 장면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계단을 통한 등장인물들 간의 물리적 간격이 프레임 상의 수평적 깊이 뿐 아니라 수직적 깊이까지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경제 활동에서도, 첩과의 관계에서도 아내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김 사장이 이 상황마저도 당당하게 대면하지 못하고 벽 뒤에 ‘숨어서’ 본다는 점은 그가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남편임을 드러낸다. 본처가 명자의 뺨을 때려 쓰러트린 뒤 명자가 흩어진 자신의 물건들을 주워 사라지는 다음 쇼트에서는 아들이 ‘엄마 쎈데?’ 라는 말을 건네자, 딸은 ‘후한이 무서워’라는 혼잣말을 하고, 본처는 ‘난 너희 아버지 버릇만 못 가르쳤다’ 는 모종의 자신감이 배어있는 답을 한다. 이 앙각 쇼트에서는 흔히 등장인물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앙각 특유의 개성이 드러나는 동시에, 가족들이 함께 비쳐지는 쇼트에서도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벽 뒤에 숨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들 사이에서의 완전한 배제 혹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모두 상실하였음을 묘사한다.
명자의 집에서는 반대로 집의 주인인 명자가 2층에서 방문자인 운전기사와 본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명자의 집이 지닌 독특한 구조(거실의 1층 천장이 뚫려 있고 빈 공간을 목재들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구조로 듬성듬성 채우고 있으며, 2층에서 1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유사 복층 구조)를 통해 마치 창살 아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만든다. 이 독특한 수직구조는 지하실로도 이어지는데, 지하실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악몽에 등장하는 괴이한 공간이자, 명자가 돌변한 운전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험에 빠지는 수난의 공간이다. 지하실은 본처의 집에는 없는 공간으로 명자의 신분 상승(1층에서 2층으로의 진입)의 이면을 드러내며 종국에는 정상적인 경로로 획득되지 못한 명자의 지위(2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본처만이 지닌 위치)가 곧 파괴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2-3. 강화된 모티브들: 쥐, 꿀벌, 새
앞서 <충녀>에서는 기존의 작품들에서보다 계단의 모티브가 한층 더 다양한 층위로 강화되었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이와 더불어 좀 더 반복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모티브가 바로 ‘쥐’이다. <하녀>와 <화녀>에서 쥐는 주인공들의 집에서 불청객이자 없애야 하는 존재였지만, <충녀>에서 김 사장의 딸은 흰 쥐를 투명한 어항에 놓고 애완용으로 기른다.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쥐를 죽이는 도구인 ‘쥐약’이 본처와 하녀 간의 긴장구도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소재였다면, <충녀>의 쥐는 그 스스로 음모와 복수의 도구이자 명자의 광기를 상징하는 장치로 등장하는 것이다.
명자와 김 사장이 이층집으로 이사하던 날 들여온 냉장고 안에는 난데없이 갓난아기가 들어있다. 김 사장은 ‘들어온 애를 다시 내보내면 재수가 달아난다’ 며 별다른 의심도 없이 아기를 기르기로 결정하고, 이 아기의 맥락도 암시도 없는 등장은 향후 영화의 내러티브가 판타지적으로 흘러가는 동기가 된다. 그런데 김 사장의 딸이 선물이라며 보낸 흰 쥐들이 집에서 번식하게 되면서, 아기는 배고플 때 쥐를 잡아먹는 끔찍한 모습을 보인다. 명자는 ‘얜 보통 애가 아니에요’라고 하지만, 사실 그 즈음부터 명자는 미쳐가고 있다.
아이를 따라 지하실 하수구에 들어간 명자가 쥐떼와 함께 해골을 보는 악몽이나, 자는 중에 위에서 쥐들이 떨어져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심지어는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충격적인 악몽들은 명자를 더욱 극한으로 몰고 간다. 명자는 본가로 찾아가 남편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고 가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기존의 장치들이 역할을 강화하는 것과 더불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몇 가지 새로운 모티브들이 등장하여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제목이 뜻하는 바대로 ‘여성이 벌레처럼 남성을 잡아먹는다’ 는 주제와 부합하는 꿀벌의 모티브와 명자를 대변하는 새의 모티브이다.
김 사장의 아들은 첫 등장에서 생명이 있는 음식을 안 먹기로 결정했다며 꿀만 먹을 것을 다짐한다. 이 장면에서 처음 언급된 꿀벌은 이후 다양하게 변주된 소도구들로 재등장하는데, 명자가 김 사장과 처음으로 관계를 갖던 여관방에 놓여있는 조명소품이나 명자의 이층 집 천장 구조들이 꿀벌이 서식하는 벌집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김 사장과 명자의 마지막 베드신에서 들려오는 사운드 몽타주 역시 벌 소리이다. 다른 많은 곤충들 중에 왜 하필 꿀벌인가 하는 의문이 조금 남지만, 암컷 벌들이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수컷 벌은 오직 번식을 위해 존재하듯 교미 후 죽는 벌의 생태적 특성이 이 영화 내에서 여성과 남성 간 사회적 관계를 은유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보게 된다.
영화 초반 고등학생의 명자는 도난사건이 해결된 이후 담임선생님에게 지목되어 청춘의 정의를 되새기게 되는데, 명자는 ‘청춘이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용기’ 라고 말한 뒤 엎드려 운다. 이 문구는 서사 상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향후 명자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흐를 때마다 그녀가 구호처럼 외치는 문장이 된다.
불의에 항거하는 자유로움이 청춘의 덕목이라면 ‘새’는 명자가 정의하는 청춘을 상징한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호스티스가 되었으나,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첩이 되어 본처의 권위에 저항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명자의 자아가 이상화된 존재가 ‘새’인 것이다. 명자가 김 사장과의 동거를 결정한 후 처음으로 그녀의 공간에서 김 사장과 섹스 하는 장면에서는 사운드 몽타주로 새소리가 들린다. 또한 자살 연습 중에 본처가 아파트로 찾아와 혼을 내자 명자가 시위하듯이 침대 위에 엎드려서 청춘의 구호를 외치는데 이 때 명자가 엎드린 모습은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 같다. 새가 의미하는 바는 후반부 김 사장을 살해한 현장검증 상황에서 명자가 면도칼로 자살하는 장면에서 날아가는 새 떼의 네거티브 이미지가 명자의 클로즈업에 이중인화로 겹쳐지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이렇게 김기영 감독은 자신만의 고유한 메타포들을 더욱 발전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상징들을 도입함으로써 <충녀>만의 개성을 획득한다.
3. 나오며
한 씬 안에 동일 포지션으로 촬영된 쇼트가 반복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감독의 완벽주의적인 성격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컬러영화가 도입되면서 김기영 감독의 작품세계는 더욱 풍부해졌다. 스틸 한 컷만 보아도 김기영 감독의 영화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반복적 자기 복제 속에서 진화를 거치며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개성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하녀>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사구조에서 액자 형 구조를 택했다는 점이다. 당시 검열 수준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모든 이야기가 정신병원에서 동료환자를 통해 들은 이야기라는 가정 하에 펼쳐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허구였음이 밝혀지면서 파격적인 설정이나 논리적 설명이 어려운 판타지적 요소들은 일종의 면죄부를 획득하게 된다. ‘비정상적 영역’에서 마음껏 노닐던 영화의 요소들이 ‘정상적 영역’으로 순식간에 환귀하면서 모든 트라우마를 봉합한다.
<하녀>에서는 이 구조를 줄곧 감추다가 영화 마지막에 공개함으로서 반전이 되었지만 <충녀>에서는 첫 장면에서 이미 앞으로의 이야기가 이야기 속 이야기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영화에서 벌어지는 파격적인 내러티브를 몰입해서 쫓다보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를 망각한 채 서사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이 구조를 재확인시키는 장면에서는 당황하게 된다. 이런 백일몽 구조는 결국 소위 ‘권선징악’으로 대변되는 주제의식을 심어주면서 예상되는 공격에 방어하려는 안전장치로 보이는데, 결국 이 영화가 지닌 본연의 ‘전근대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2년에 이런 영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국 영화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여전한 여성 수난 시대에 ‘남권을 찾아야 해! 남성은 너무 잃은 것이 많아! ’라고 외쳤던 영화가 가진 파격성은 현재의 시선으로 보아도 경탄을 감출 수 없다.
참고 문헌
<영화 작가 김기영의 표현주의 작품 세계 연구> 김수남, 영화 연구 11호, 1995
<하녀들 봉기하다 : 영화 감독 김기영> 이효인, 하늘아래, 2002
<24년간의 대화-김기영 감독 인터뷰집> 대담: 유지형, 선, 2006
<전설의 낙인> 이연호, 한국 영상 자료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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