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는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보기






  작년 부산영화제 때의 일이다. 광모 감독님과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름다운 시절>이 제작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중학생이 뭘 안다고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면 다 좋은 줄 알고 영화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극장 따라다녔다며 농담조로 어린 시절 얘기를 했다. 그러자 이 감독님은 대답하셨다. 영화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이라고.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사람들을 카페에 모아놓고 기차가 역 플랫폼에 도착하는 모습을 촬영한 짤막한 흑백영상을 보여주었을 때, 사람들은 진짜 기차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고 착각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고 한다. 1895.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0년은 아마도 향후 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관객들이 그 동안 놀이공원에서나 간간이 접해왔던 3D 영화를 실사영화로, 좀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좀 더 능동적으로 관람하기 시작하는 계기를 제공한 영화 <아바타>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로버트 저메키스가 <폴라 익스프레스> <크리스마스 캐롤>등을 통해 꾸준히 입지를 다져오기는 했지만 <아바타> 만큼 대중적으로 소구되지는 못했기 때문에 올해야말로 진정한 극장판 3D영화의 원년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다.

 3D라는 제작포맷은 2차원 평면이라는 스크린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며 최근 폭발적인 관심을 받아왔고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들과 기업들이 기술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기술에 쏟아지는 관심도에 비하여 현재까지 개봉한 극장판 3D영화들이 스크린의 확장성이라는 화두에 있어서는 그리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드림웍스에서 오랜만에 문제작을 내놓은 것이다. <릴로와 스티치> 2002년 아카데미 최고의 애니메이션 후보에 올랐던 딘 데블로이스 감독과 크리스 샌더슨 감독의 연출 하에 그 동안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을 책임지고 있던 강력한 스탭진들이 모여 진정한 3D영화의 묘미를 일깨워주는 <드래곤 길들이기>를 만들어냈다.

바이킹과 드래곤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버크 섬에서 바이킹 남자로서 갖춰야 할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섬세하고 손재주 많지만 싸움에는 영 소질이 없는 소년 히컵이 바이킹들에게는 최대의 적인 투슬리스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 <드래곤 길들이기>.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바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히컵이 익룡인 투슬리스 등에 타고 버크 섬 하늘을 비행하는 장면은 스스로 다 큰 어른이라는 걸 망각한 채 극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4D 플렉스로 영화를 관람하니 투슬리스의 날개가 수면을 스칠 때마다 좌석 앞에서 물이 펌핑되고, 주인공들이 벽에 부딪히거나 땅에 떨어질 때마다 좌석이 들썩거리며 체험성을 극대화시킨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인물들 캐릭터를 제외한 배경그림은 실제와 흡사하게 묘사되어있어 정말 그 순간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바타>의 비행씬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명장면이다. <아바타>의 비행장면은 짧고 단발적이지만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주인공이 익룡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굉장히 길고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비행 시퀀스는 총 세 군데, 히컵이 투슬리스의 꼬리날개를 치료해준 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첫 비행, 항상 히컵에게 경쟁의식 내지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적대적으로 대하던 아스트리드에게 투슬리스가 바이킹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던 비행, 마지막 전투에서 거대한 독재자 용의 소굴을 빠져 나오는 장면 등이다. 마치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익룡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하늘을 나는 시퀀스를 많이 삽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픽사의 <>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인간 동심의 꿈을 이미지로 재현했다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첨단의 기술력을 통해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에 내재된 소망을 재현한다. 물론 영화의 미덕이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장점을 언급하는 데 있어 그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 그리고 그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세계관들까지 총체적으로 훌륭한 영화이지만 관객들에게 이런 소중한 체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더욱훌륭해지는 것이다 
 
드림웍스에서 이 작품에 너무 공을 들이느라 슈렉 시리즈를 방치했나 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슈렉 포에버> <드래곤 길들이기>로 한껏 부푼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다소간 배반한다. 굳이 왜 3D로 제작했는지 그 기획의도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는데 아무래도 새로운 기술력을 통해 더 보여줄 만한 것이 있었다기보다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냥 트렌드를 따라 포맷을 결정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고양이를 꼭 닮은 귀여운 괴물 투슬리스 캐릭터에 수많은 애묘가 관객들이 열광한다. 자신만의 관점과 오해 섞인 가치관으로 타자를 대하는 바이킹 족들의 모습에서 911테러 이후의 미국의 심리상태를 읽는다거나, 히컵의 캐릭터에서 근대적(?) 영웅들이 지닌 마초 콤플렉스를 극복한 현대적 남성성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의 한계라고 여겨졌던 (심지어는 <슈렉>마저 극복하지 못했던!) ‘완벽한해피엔딩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버린 놀라운 결말까지 장르의 관습을 비틀며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영화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무엇보다도 히컵을 태운 투슬리스가 푸른 하늘을 날아오를 때이다. 나는 기술 지상론자도 아니고, 기본도 없이 잔재주 부리거나 시각적 자극에만 몰두하는 영화들을 혐오해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을 보며 기차가 자기에게 오는 줄 알고 놀라 도망갔다던 초기 영화 관객들의 환상적 충격과 유사한 감정을 체험했다. 그 순간 영화는 이해하는 예술이 아니라 경험하는 예술이 되었다. 그리고 경험 그 자체가 주는 물리적인 유희를 다른 관객들도 느껴보기를 권하게 되었다. 무슨 말이 필요 한가. 그저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을.
 
머리보다는 온몸으로 느끼고, 눈과 귀보다는 오감(五感)으로 체험하는 영화의 시대가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3D 4D 포맷도 일반화되어 관객들은 그 물리적인 자극에 곧 흥미를 잃게 되겠지만, 아직까지 현재의 관객들에게 소위 이 입체영상자체의 물성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유의미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매우 흥미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행운의 관객인 것이다. 100년 쯤 후에 4D 영화마저도 시큰둥하게 관람할 수 밖에 없게 된 미래의 영화 팬 들은 절대로 느낄 수 없을 신기한 체험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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