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역사를 쓰다_마당을 나온 암탉 -보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극영화와는 달리 미국과 일본 작품들에 밀려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극장용 한국 애니메이션이 8월 말 현재 2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제작사인 명필름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관객 수를 기록한 것이다. 그간 충무로 상업영화만을 제작해왔던 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100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원작에 매료되어 제작을 결심한 지 6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30억 여 원이 순 제작비로 들어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손익분기점은 극장관객 150만 여명 정도. 8월 19일, 드디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을 이 영화의 관계자들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사실상 세계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이다.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물 캐릭터의 털끝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잡아내는 미국의 3D 애니메이션과 특유의 탄탄한 이야기와 감성, 진지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일본의 애니메이션들에 높아진 관객들의 눈은 웬만한 작품으로는 쉽게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거듭되는 3D 영상물 제작 물결에도 휩쓸리지 않고 감독과 제작자는 순수하게 2D만으로 감동적인 스토리를 표현해내는 한국형 애니메이션을 고집했고, 이는 범람하는 3D작품들 속에서 오히려 차별성을 갖는 지점이 되었다. 여기에 애니메이터들이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고 하는 아름다운 배경의 풍경들도 섬세한 색감과 특유의 감성을 표현해내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강점을 드러냈다. 


 아무리 유명한 원작과 좋은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한국 애니메이션이 성공한 전례가 없었기에 제작 초기 단계에서 영화는 투자에 난관을 겪었다고 한다. 냉정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작품을 알아본 공공기관(경기도 디지털 콘텐츠 진흥원,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지원금과 제작 후기 단계에서 롯데 엔터테인먼트 측이 P&A비용을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여기까지 왔다. 단순히 소신 있는 감독과 제작자의 용단 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기업이 힘을 합쳐 이런 아름다운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에서 2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도 모자라, 9월 초 중국에서 대규모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극영화와는 달리 언어의 장벽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애니메이션의 특성 상, 중국에서 흥행할 경우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이 K-pop에 이어 신한류 주역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을 듯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화 원작이지만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지는 않는다.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캐릭터로 동물 주인공을 내세워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생태계의 먹이사슬과 생명의 순환을 미화나 가감없이 그림으로써 성인 관객들도 무리 없이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픽사의 <업>이후 오랜만에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나온 셈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화라고 하기에는 전반적으로 꽤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룬다. 크게는 알을 낳는 의무에 시달리는 양계장 난용종 암탉의 운명을 타고난 '잎싹'이 양계장과 마당(사람들의 공간. 야생이 아닌 사육의 공간)을 도망쳐 자연 속에서 다른 종들과 어울려 자신만의 삶을 찾아간다는 성장드라마적인 메인 플롯이 있다. 그 안에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발전형 서사인 타인, 타종(他種)에 대한 경계와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과 이를 극복하는 '초록'의 서브플롯과, '나그네'와 '잎싹'의 멜로, 자신을 희생하며 타자의 생명을 어루만지는 숭고한 모성애와 계절처럼 지고 피는 자연의 섭리 등 수 많은 작은 주제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얼핏 보면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와 영화 속 시간들을 93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담아내기 버거워 보인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워질만한 이야기들은 빠른 진행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상쇄된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생략하기도 힘든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진행시키는 데에는 원작에는 없던 부동산 업자 수달 캐릭터인 '달수'가 큰 몫을 한다. '달수'는 늪이라는 공간에 처음 와보는 잎싹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그녀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늪의 터줏대감이자, 초록이의 교육자이기도 하며, 무거워질만한 이야기에서 웃음을 주는 포인트로 맹활약하며 자타공인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감초캐릭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애니메이션 판에서 이 캐릭터를 영입(?)한 것은 제작진의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달수 역을 맡은 배우 박철민 씨의 능청스러운 사투리 연기는 주로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와 캐릭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엄마인 잎싹 대신 청둥오리 초록에게 나는 법을 알려주는 박쥐나 올빼미, 잎싹이 있던 양계장 주인집의 오리와 수탉들도 잠깐의 출연이지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메인캐릭터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영화에서는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줬던 배우들도 아직 목소리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지 캐릭터에 완벽하게 밀착되지 않은 것 같은 목소리로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한다. 시종일관 불안한 발성과 감정표현에 별다른 기복이 없어 보이는 잎싹 역의 문소리 씨의 연기보다 어린 초록과 청소년기의 초록 간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목소리의 성숙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유승호의 목소리 연기에 오히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이 흥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TV용 애니메이션에서 더빙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인 전문 성우들을 기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몇 가지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당을 나온 암탉>에 지지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 애니메이션이라서가 아니라, 삶과 생명을 보는 성숙한 태도와 자본력과 기술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심혈을 기울인 제작진의 노력과 신념 때문이다. 


 똑같이 닭을 주인공으로 세웠던 영국 애니메이션 <치킨 런>도 마찬가지이고, 동물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들에선 주인공보다 먹이사슬의 상위단계에 있는 종이 악역으로 그려진다. <치킨 런>에서 악역은 닭 농장의 주인인 인간들이고, <톰과 제리>도 얄미운 짓을 하는 건 쥐인 제리 이지만, 항상 당하는 것은 톰이다. 이것은 상대적 약자인 주인공이 강자인 악역에 맞서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선택이고, 그래야만 관객들이 주인공 캐릭터에 감정이입의 여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거의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설정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도 역시 초반에는 '나그네'를 호시탐탐 노리는 족제비 '애꾸눈'이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극 후반부에 족제비 역시 살기 위해,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냥을 해야 하는 사연이 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악역에게도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고차원적인 애니메이션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한의 근원이자 평생 자신을 괴롭혀온 악역과 그 생명을 위해 주인공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음으로써 자연의 섭리를 억지로 부정하거나 이를 신파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결말인가!  


 숭고한 주제를 다룸과 동시에 초록의 비행 시퀀스 등 시각적, 오락적인 재미까지 놓치지 않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주제의식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당당히 성공하며 평단과 동시에 관객들까지 감동시키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 때문에 비록 극장에서는 낮 시간 대 위주로 교차상영 되고 있지만, 명성에 힘입어 곧 전일상영 체제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낮에도 밤에도, 이 영화가 극장에 걸려야 하는 이유는 내가 극장에 갔을 때 자꾸만 내 좌석을 발로 차는 어린 소녀 때문에 불편한 나머지, 아이를 좀 자제시켜 달라고 부탁하려 뒤를 돌아봤더니, 그 아이의 부모님들이 완전히 영화에 몰입되어 너무도 해맑게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그 신나하는 모습에 찬물을 끼얹을 수가 없어 아이의 발차기를 꾹꾹 참아냈다. 오랜만에 나온 어른과 아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부디 한국 시장에서도, 세계 시장에서도 좀 더 선전하길 기원해본다. 


 

 



덧글

  • 오엠지 2011/08/31 10:05 # 답글

    여전히 성우는 별로였지요. 그래도 박철민 아저씨의 달수연기는 제대로였습니다. 문소리씨의 경우 자식과 연기하는 감정대화는 문제없어보였어어요 그보다 '어?' '어?' 하느것과 일상 대화에서 매우매우 어색했죠 성우문제도 있만 대본 문제도 있더군요
  • 국가대표 한량 2011/09/01 21:58 #

    저도 단기간이지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업을 해봤는데.. 대사 쓰기가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 눈높이에 주로 맞춰서 쓰다보니 제약이 많더라고요.
    그런 점들은 너그러이 봐주시면 어떨까요..^^;;
  • 아... 2011/08/31 18:58 # 삭제 답글

    저는 이거 보고 짜증 제대로 났었습니다. 사전에 알아보지도 않고 재미를 기대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ㅠ
    달수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고 웃음포인트가 너무 영유아수준이더라고요. 내용도 너무 밋밋하고 상투적이고 뻔하고 차라리 배추도사 무도사를 보는게 더 재밌겠따 싶던데요. 이건 그냥 딱 아동용 동화....
  • 이런 분은 2011/09/01 12:10 # 삭제

    책으로 읽으셈. 애들 타깃의 애니라서 애들 눈높이에 맞춰서 많이 각색한 점은 어쩔 수 없심.
    사실 책은 아동용 눈높이는 전혀 아님...훨씬 쿨하고 수준도 더 높심..
  • 국가대표 한량 2011/09/01 22:00 #

    저도 기대를 너무 많이 했었기에 약간 실망한 부분들도 좀 있었는데요
    웃음 포인트나 이런 것은 아무래도 아동관객 위주로 설정하고 가는 거니까
    조금 관대하게 이해해주셨음 좋겠어요^^;;
    애니메이션 특성상 아동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사실상 흥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 2011/08/31 23: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국가대표 한량 2011/09/01 22:01 #

    응 이 감독인터뷰 봤던게 생각나. 조류는 머리가 너무 작아서 캐릭터화하기 너무 힘들었다고 ㅋㅋㅋ
    누구는 캐릭터 만들기 좋겠네...? ㅋㅋㅋ
  • piece 2011/09/02 23:29 # 답글

    오늘 보고 왔는데 저는 예습(?)을 하고 기대를 안 했다기보다는 그래 감안하고 보자하고 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훌륭하더라구요! 지금도 괜찮다못해 좋은데 정말 제작비가 좀 더 들어가고 전문성우를 썼다면 정말 엄청났겠다 싶었어요!
    글 참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국가대표 한량 2011/09/04 00:30 #

    네 이 영화가 잘 되면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겠죠~
    졸필인데 칭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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